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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선사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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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노파심?

작성자 : 무애심
작성일 : 2024-03-27 21:01:55
조회수 : 4

오온: P158∼159에서 "덕이본(德異本)에서는 혜능(惠能)대사께서 돈오(頓悟)한 계기가 된 경(經)의 구절이 <금강경>에 있는 "응당 머문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어다[應無所住 而生其心]"란 말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선지식이 수행자의 돈오를 확인한 다음 수행자에게 앞으로 살아가는 指針을 일러주게 되는데, 그때에 이 말을 하여줌으로써 돈오한 수행자로 하여금 수행불행(修行佛行)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덕이본(德異本)은 혜능대사의 돈오(頓悟)하는 계기부터 잘못 전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 글을 쓴 덕이 비구(德異 比丘)는 돈오(頓悟)라는 깨침과 수행불행(修行佛行)의 깨침에 대하여 그 실상(實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원대(元代)에 출현한 덕이본(德異本)이 지금까지 <단경(壇經)>을 대표하여 유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의 핵심(核心)이 틀렸음을 지적한 선지식이 아무도 없었다고 하는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불법(佛法)의 진수(眞髓)가 계승되었던 전성기(全盛期)는 달마(達磨)대사 이래 당대(唐代)의 혜능(惠能)대사부터 시작하여 송말(松末)의 오조 법연(五祖法演)→원오극근(怨惡克勤)→ 대혜 종고(大慧宗 )에서 끝나고, 그 이후에는 쇠퇴기에 들어 갔던 것이다" 했는데, 

덕이본(6조단경)에서는 6조께서 돈오한 대목이된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란 구절이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어 틀린 경이고 돈황본에는 이런 구체적인 것을 밝힌것이 없기때문에 바른 경이라고 하는 지적도 엉뚱하기 그지없는 소리이며 또 이"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말은 오도한 후에 수행불행으로써 반드시 일러야 하는 말이며, 이 말을 꼭 해주어야 수행불행을 다시 깨닫게 된다는 논리도 어처구니없는 소리인 것이다. 

"그래서 덕이본은 6조의 돈오 계기부터 잘못 전하게 된 것이라"고 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소리이다. 

모든 경가운데는 깨달음에 이르는 道理가 수없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 수행인의 공부가 성숙되었을 때 어느 구절의 기연에 이르러 활짝 깨닫게 되는 예는 여러 선사들의 예로써 종종 보게되는 바이다. 6조께서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대목에서 깨치셨든 다른 어느대목에서 깨치셨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며 더구나 "금강경 가운데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구절은 부처님께서 일체에 두루 상주하는 청정불성 그대로 집착함이 없는 생각을 일으켜 쓴(用)다"는 본성의 뜻을 일러주신 말씀이거늘, 무슨 수행불행이니 하는것을 일깨워 줄때 쓰라고 하신 말씀이란 말인가? 이따위 소견으로 선지식인 덕이선사를 질타하고 실상을 전혀 모르는 이라고 비하하는 것인가? 

또 이것을 틀렸다 하고, 이 틀린 것을 지적한 이들이 없음으로 대혜 종고 선사에서 끝나고 이후에는 마치 이것을 지적하는 자기가 오직 선지식이라는 것을 자랑삼고 있는 작태는 무엇인가? 이렇게 괴상할 수 있는가? 모르면서 아는척 삿된소견을 늘어놓고 있는 자기를 되돌아보는 성찰과 참회가 필요한 이로다. 

이어서 "쇠퇴기에 들어가면 돈오라는 깨침과 수행불행의 깨침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어 구경각에 이르는 필요조건을 충족한 깨침만 전승하게 된다 운운...”은 더 설破(깨뜨려)하여 파사현정하려 하지 않겠다 

다만 돈황본은 바른 六조단경이고 덕이본은 틀린 단경이라는 소견은 곧 역대조사의 깨우침이 모두 가짜라는 논리로 귀결지우는 邪見만을 채찍을 가하고자 하니 그러는 그는 누구로부터 인가를 받았으며, 그 스승은 누구로부터 수행불행의 깨침을 다시 받았으며, 이것을(덕이본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구체적으로 6조선사의 깨친 구절이 있으므로 잘못된 것을) 지적하지 않았으니 그분도 선지식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게 된것은 어떻게 합리화 시킬 것인가? 스스로 자기 모순을 입증하고 있으니 진리가 아니면 즉 확철하게 깨닫지 못한 이의 말은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모순과 異說을 하게되는 것임을 깜짝놀라 돌아 보게된 것이니라. 

덕이본과 돈황본을 차제에 견주어 살펴보니 내용에 있어 덕이본이 여러곳의 문맥상 近似하다 하겠다. 또 돈황본에는 誤字가 너무도 많음도 그러한 까닭이다. 따라서 역대 조사들께서 5종 異本가운데 가장 완벽한 것으로 공인한 단경으로 읽혀 왔음의 본의가 지당하다 하겠다. 6조단경이 5종이나 되고 相異점이 많은 폐단은 6조께서 문자에 밝지 못함으로써 직접 글로 남기지 않고 口訣(스승이 입으로 설한 요의를 적음)이기 때문에 서로 이런 沾削과 자기소견이 더하여짐이 연유된 것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하겠다 하신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스님께 합장삼배 올립니다 

도인은 피곤하지 않으신가요? 이렇게 많은 대상들과 법담을 주고 받으시니 피곤하시겠다싶어서요. 

스님 고맙습니다. 부족한 물음에서 확고한 심념을 담게되었습니다. 

여기 대 자유인의 내용을 보니 너무나 허탈 합니다. 

스님의 지적이 아니셨다면 너무나 잘못된 내용에 눈먼자들이 더욱 많았을 것입니다. 바로 저의 상황처럼. 

또한 선지식은 아직 그 맥이 이어지고 있겠지요? 

평소 저의뜻과는 상반된다 싶었는데 스님의 견처를 대하고 보니 의문이 풀렸습니다. 오도된 법의 재조명의 장으로 인해 미혹한 저로써는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뜬금없는 물음을 드리겠습니다. 

불자는 말법이라하고 다른신앙인들은 말세라 합니다. 

다른신앙인은 몰라서 그렇다지만 

불자님들은 왜 말법이라 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불교가 얼마나 포교가 잘되고 있으며 타종교를 믿던 나라에서 종교를 바꾸고있고 세계적으로 불교를 추앙하고 있는 요즘 어째서 불자님들과 부처님께서 후500년이란 말을 하셨으며 말법이라는 소리들을 하는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요? 

부처님의 노파심 이었을까요? 오온합장



장군죽비: 오온님

불법이 말법시대라 하는 것은 無常한 겉모습으로야 불법이 오온님의 말처럼 현시대가 성한 것또한 사실이외다. 그러나 석가 세존께서 예지하신 말씀이나 이구동성으로 말법시대라 하는 것은 상으로써 보이는 사찰, 스님 불경이 살아짐으로써가 아니라 정법의 바른 도리를 설하고 공부하고 전해지는 파사현정이 성한 시대가 아님을 이르는 것이외다. 이시대를 돌아보세요. 큰스님 또는 조실, 도를 깨친 듯이 하는 이들, 유명한 이름 알려진 분드이 얼마나 많나요.  참으로 도를 깨친 분들 그리고 바른 법을 드러보이고 지도하는 선지식이 많던가요? 사마외도의 말을 깨친 도인의 말처럼 큰소리치며 쏟아 놓아도 그것을 가릴 관문지기인 조사들이 참으로 있어 많던가요? 후 500세인 2500년 뒤 지금의 말법시대를 세존께서 설하신 뜻이 여기에 있소이다. 스스로 눈밝은 이를 찾아야 하오. 속게되면 차라리 모르는 것만 같지 못하오이다.         -장군죽비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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